오랜만입니다. 모두 행복하신지요?   ^L^

 

올해도 여지없이 한여름의 뜨거운 날들이 지나고 있습니다.  건강하신지요?
참 세월 빠릅니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주인조차 찾지 않았던 이 블로그에 혹시나 하고 차마 비바람에 낡고 헤진 대문 빼꼼히 열고 들리셨다 헛걸음하고 돌아가셨던 분들께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그런데,
 
참으로 못돼먹은 것이, 자기 소관에만 바빠 안부 엽서 한 장 못 올리면서도 정겨운 이웃들의 궁금한 소식은 이따금씩 알음알음 보아왔던 터였습니다. 

 

아직 한창인 퍼런 청춘의 언저리에서 위태롭던 누구는 군에 갔고,  결혼해서 꾸러기 아이 둘 키우는 주부가 되어도 차마 떨칠 수 없는 운동성에 고민하고 사람에게 모임구조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지역에 참여했던 아줌마는 아직 그 열정 식지 않아 호시탐탐 열공중이시고, 또 어떤 성실한 가장께서는 가족 모두 한반도 최남단으로 이주하시어 낙원을 일구시는 중이시고, 또 다른 예술가 선생께서는 그 동안의 암중모색을 끝내고 성공적인 전시회를 마치셨고.., 그리고,
유명하신 그러나 좀 더 유명해지셔야 했던 어떤 사진가와 한솥밥을 먹었던 친구와 동지들은 지금 국가보안법이라는 늙고 간교한 주술사의 주문에 걸려 어금니를 드러내고 사방에서 달려드는 승냥이떼에 둘러싸여 당장의 오늘과 내일이 위태롭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누구는 공부를 하고, 누구는 밀린 군대에 가고, 누구는 이사를 하고, 또 누구는 밤새워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어금니 세우고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승냥이떼에 맞서 자신과 가족 그리고 직장을 지키기 위해 살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누구는 쇳가루에 기름밥을 먹으며 땀을 나눴던 동료와 벗들이 더 이상 죽지 않고 살아 있기만을 바라며 크레인에 오릅니다. 행복하길 바라며 폭우 속에서 버스에 오르고, 행복하길 바라며 뙤약볕 대로변에 앉아 밥을 굶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대부분은 서서히 변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시기가 갑작스레 닥치면 혼란스럽고, 적잖이 당황하기 일쑤입니다. 사람의 성장에 비유하자면 사춘기 같은 시기지요.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이 사회와 국가도 그렇다는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시기에는 그 절실한 기대와 바램과는 달리 너무나 천천히 조금씩 변하기에 성미 급한 사람들은 조급해하기도 합니다. 해서 그 조급증에 영 엉뚱하게 모험주의적 경향이나 맹동적, 급진적 모습을 보인 나머지, 일을 그르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급격한 사회변동의 시기에는 그 변화가 너무 빨라 정작 그 변화의 추이와 의미를 미처 이해하고 정리해내지 못해서 올바른 변화를 추동하고 목적의식적으로 움직이기는커녕, 그 변화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가기에도 벅찰 때가 있습니다.  때문에,

 

머지않아 곧 닥치게 될 금세기 최초의 대변혁의 시기, 혹은 대전환의 시기엔 주변에 난무하고 사방으로 비산하는 사태와 정보를 꼼꼼히 따져서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유익하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사회적으로 그런 일을 업으로 하는, 아니 업으로 해야 하는 집단들이 있지요. 그런데 또 아시다시피 지금 그네들의 꼬라지가 아주 고약합니다. 그 형편무인지경의 몰골은 어제 오늘의 얘기도 아니지요.

 

시시각각 벌어지는 사태와 정보들에 대해 의심하고 의혹을 품어야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미디어의 기자들과 관련분야 학자 및 전문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할 자질입니다. 그리고 그 의혹과 의심은 단순한 사실과 정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깊이 있고 책임 있는 대중적 폭로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 미국의 제국주의 시대를 연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같은 사람조차 기자들을 지칭해 "거름 뒤지는 인간"으로 묘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아름답게 보이는 사회 속에 숨겨진 추악한 일면과 사태의 본질을 그 무엇보다도 먼저 폭로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대자본의 그물망에 붙잡힌 요즘의 관료주의의 행태와 매한가지로 기자들과 관련분야 전문가 및 학자집단 또한 자본의 달콤한 입맛에 길들여져, 그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 따위는 잊은 지 오래입니다.

 

아시다시피, 음향에서 쓰는 말로 신호대잡음비(signal to noise ratio)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신호대잡음비가 좋아야 좋은 음향기기로 비싼 제값을 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S/N비, 즉 신호대잡음비를 최선의 상태로 만드는 것처럼 최소한 쓸모있는 정보(signal)와 쓰레기(noise)를 정확히 분류하여 추려낸, 제대로 가치 있는 정보(신호)를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조차 힘든 지경이 되었습니다. 죄다 "하의실종"한 기사와 쓰레기 노이즈만 어지럽게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조차도 조중동의 악의적인 소설들에 비해서는 지극히 선량합니다.







아이고, 또 쓸데없이 중언부언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요즘 들어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그의 애니메이션인 붉은돼지(Porco Rosso)에서 주인공 marco pagot의 대사를 빌어서 말한  "인간은 중년이 지나면 돼지가 된다."는 자못 근사하게 들렸던 고백이 점점 뼈아프게 사무칩니다. 그냥 티나서 흠잡히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관성적으로 적당히 밥벌이에 임하고, 오직 잘 먹고 잘 싸고, 수시로 치미는 정욕이나 채우며 새끼 키우기에만 몰두하는 돼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선량한 이상에 생각보다 더욱 가혹하다는 것을 실감해가면서, 그동안 너무도 아름다워 멀리서도 애써 품어왔던 어설프고 조악한 꿈과 이상조차, 얼치기 등반가의 가쁜 호흡으로 겨우 오르는 고산지대의 산소처럼 점점 희박해집니다. 해서, 스스로에게도 호된 각성과 기합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혹시나,

덤으로 이 가혹하고 비정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꿈을 꾸는 행복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과 삶이나마 지키기 위해,  무엇이 쓰레기 잡음이고 무엇이 쓸만한 신호인지 구분하길 원하시는 분들께서 우연히라도 이 곳에 들렀다가 털끝만큼의 도움이나 되었으면 족하겠습니다.

지나치게 낡은 것들은 새로 정리하고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물론,
지금의 생각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또다시 예전처럼 뻘글이나마 아무런 통보도 없이 불시에 사라지거나 해서, 이 곳에서의 글쓰기가 다시 재미없어지면, 이따금씩 사진이나 올리며 놀겠습니다. 

 

공사중에는 예전의 글들 중에서 몇 개를 제외하고는 전체 페이지 목록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페이지가 열리지 않겠습니다.   ^L^

 

Kongsa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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